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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_바닷가를 달리는 기차와 남부 마을여행기록 2021. 10. 11. 19:18
스리랑카 여행 기록_바닷가를 달리는 기차와 남부 마을
1박 2일로 두 번째로 떠나는 스리랑카 여행의 목적지는 히카두와! 스리랑카 남부 바닷가 마을들을 여행하기 좋은 시즌이 11월~3월 정도이기 때문에 남부시즌의 끝을 잡고 서핑 여행을 떠났다.
이번에는 둘이서만 여행을 가게 돼서 차량렌트는 하지 못하고 기차를 타기로 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버스보다 기차를 훨씬 좋아했는데, 랑카에서는 타기가 조금 겁났다. 지난 달에 먼저 히카두와를 다녀온 친구들이 기차타면 창문도 없고 매연먹고, 엄청 덥고 자리도 없다고 그래서 엄청 최악일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근데 역시 "직접 해보기 전에는 평가하지 말자" 이 말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어딜 가든지 항상 이 말이 진리라는 것을 느낀다. 직접 타본 랑카의 열차는 굉장히 낭만적이었고 기차 덕분에 여행이 더 좋게 느껴질 정도였다.
히카두와로 가는 6번 플랫폼. 기차와 기차역 모두 낡았지만 그 나름대로 클래식한 매력이 있었다. 특히 기차역이 생각보다 이국적이어서 온 지 두 달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갑자기 스리랑카에 온 기분이 들었다. 진짜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곳에 와서 그런 듯 하다.
차량으로 편하게 이동할 때는 느낄 수 없는 분위기여서 좋았다. 또한, 차량을 이용할 땐 하루에 8,000루피를 내야했는데 기차를 이용할 때는무려 210루피다... 스리랑카는 교통비가 굉장히 저렴하다. 시내에서 10분동안 툭툭 타는게 100루피인데 기차 2등석이 210루피라니 진짜 말도 안되는 가격이다.
1등석에는 a/c가 있다던데 우리가 타는 기차에는 1등석이 없어서 2등석을 끊었다. 처음에 줄을 잘못 서서 탔더니 3등석이었고 다시 내려서 2등석 칸으로 가니 이미 자리가 없었다. 솔직히 서서 가야된다는 생각을 했을 땐 조금 막막하긴 했다. 서서 가는데 갑자기 서울의 지옥철이 오버랩되었다. 자리가 나면 눈치싸움으로 자리 쟁탈전 하는 것 까지 이건 기차가 아니라 지하철같다고 생각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앞에 앉은 아이들이 마타라라는 지역으로 간다길래 찾아보니 우리보다 더 멀리 가는 아이들이었다. 자리가 날 확률이 없는 것이다. 급한대로 손잡이에 걸터 앉아서 가고 있는데 아이들이 같이 앉자고 자리를 양보해줬다. 2인석에 세 명이 앉아서 갔다. 진짜 신기한 경험.. 한국이었으면 손잡이에 앉거나 세 명이 같이 앉거나 하면 벌써 민폐라고 눈총받고 그럴텐데 이런 무질서가 뭔가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서로 돕고 자리를 양보하며 덜컹이는 기차를 타고 가는게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기차에는 창문이 없어서 바닷바람이 다 들어온다. 매연이 들어와서 숨을 못 쉴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자연 바람을 맞으며 바닷가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으니 좋았다. 느리고 덜컹이고 시끄러운 기차이지만 마음이 평화롭고 좋았다.
히카두와 도착! 웰리가마 보다는 더 로컬스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히카두와에서 엄청 유명한 mamas 레스토랑. 음식은 별로 였는데, 뷰가 좋아서 유명한 것 같다. 이런 곳에서는 음식 맛으로 먹는게 아니라 풍경보는 맛에 먹는거니까 그러려니 했다.
Life is better in flip flops.
이 말이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랑카와서 제일 많이 느낀 감정들을 센스있는 문구로 표현하면 딱 이 문구로 표현할 것 같다.
플립플랍을 신고 평화롭고 여유로운 지금 이 마음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완벽한 먹고 자고의 루틴
드디어! 서핑을 했다. 그냥 길을 걸어 가다가 발견한 서핑 스쿨에 들어갔다. 히카두와는 파도가 작아서 조금 더 멀리 있는 바다로 가야 서핑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호텔로 가서 수영복 입고 차를 타고 골까지 갔다. 얼떨결에 골이랑 히카두와 둘 다 와보게 됐다.
골에 도착해서 서핑을 시작했다. 서핑 너무 재밌어서 하는 동안은 탐폰에 대해서 잊을 수 있었다. 숙소 가는 길이 진짜 불편했지만..
아이처럼 바다에 첨벙 들어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바다를 보는 것과 수영장에서 강습받는 것만 좋아했지, 직접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거나 액티비티를 하는걸 즐기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계속 안 쪽으로 들어가는데 생각보다 물이 깊은 것 같아서 덜컥 겁이 났다. 파도도 세서 자꾸 물먹고 눈도 따가웠다. 보드 위에 타서 강사님이 밀어주시는 파도로 시도해봤는데 처음에는 자꾸 일어설 수 없었다. 얼추 일어나긴 했고 어떻게 하는 건지는 알겠는데 팔에 힘이 부족한게 너무 느껴졌다. 팔에 힘만 있으면 바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데 힘이 안 들어갔다. 진짜 상체 운동을 해야겠다고 느꼈다. 팔은 그저 상체를 일으키는 보조의 역할을 하고, 코어근육이 잡혀있어야 진짜 일어설 수 있었다.
파도 위를 미끄러지는 기분은 생각보다 더 좋았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기도 했고. 포세이돈이 된 기분이었다! 진짜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기분인 것 같다. 이래서 사람들이 서핑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파도를 마주할 땐 엄청 겁이 나는데 내 힘으로 보드 위에 올라선 순간 파도는 내 아래에 있다. 이렇게 작은 보드로 바다 위에 서있을 수 있다니. 여러모로 신기한 운동이다. 체력소모도 엄청나서 1시간 반 정도 탔는데 힘들었다.
처음엔 바다가 너무 무섭고 자꾸 빠지니까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렇지만 그 바다를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만의 코어 힘으로 중심을 잡고 서려고 노력하니 그 어느때보다 뿌듯하고 강렬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때의 기분을 기억하며 어려운 일이 있어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 주관, 나만의 힘으로 이겨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보드 위에 섰던 순간처럼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 내가 그 위에 서있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날씨는 쨍쨍하지 않았고 오히려 구름끼고 비도 왔지만, 그게 더 좋았다. 너무 덥지도 않고 눈부시지도 않아서 열심히 탈 수 있어서 좋았다.
열심히 서핑하고, 씻고서 저녁 먹으러 나왔다. 저녁 먹기 전에 에피타이저로 "Sorry Mom"이라는 튀김집에 왔다. 간식용 튀김을 파는 곳이었는데
왜이렇게 힙해..? 랑카에서 볼 수 없는 연남동 감성의 튀김집이었다. 분명히 외국인이 차린 가게 같은데, 누굴까 궁금했다.
그리고 센스있는 입간판들이 많아서 보는 재미가 있다.
본격 저녁으로는 "HikkaPub"이라는 곳에 왔다. 수프랑 프라이드 누들을 시켰는데 수프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이 날 생리통때문에 약을 먹어서 아쉽게도 맥주는 못 마시고ㅠㅠ 목테일을 마셨다. 맛있어
히카두와에서도 호텔 카운터, pub의 직원 등등 한국에 대한 관심이 있거나 한국으로 가고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한국에 가려면 시험을 패스해야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사람들이다. 짧은 한국어를 할 줄 알아서 우리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는데, 상대 나라의 말을 조금 아는 것이 관계 형성에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준다는 걸 실크로드 때도 느꼈지만 이번에도 많이 느낀다. 그리고 우리도 이제 싱할라어를 배운지 두 달 정도 되어서 간단한 문장들을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 싱할라어로 말하면 랑카 사람들이 굉장히 놀라고 좋아한다. 랑카에 동북아시아인이 많지 않은데다 우리가 배우기 힘든 싱할라어를 말하니 놀라워하는 것 같다. 싱할라어를 하면 굉장한 호감을 가져준다. 인종차별이 아닌 서로에 대한 호감을 기반으로 둔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정말 즐겁고 여행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
다음 날 아침, salty swamis 카페에 와서 아침을 먹었다. 굉장히 인상적인 곳이었다.
오렌지빛 머그컵에 담긴 플랫 화이트라니. 정말 히카두와스럽다고 생각했다. 이 곳 뿐만 아니라 히카두와 지역 전반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가 깔려있는 것 같다. 콜롬보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오히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메이카 느낌이 난다. 바닷가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조금 더 탄 피부를 가지고 있는 것같고 자유로운 옷차림을 하고 있다. 남자들은 머리를 길러 묶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가게에서 주문을 받을 때도 굉장히 친절하다.
또 인상적이었던 건 how are you? 라고 물어본 뒤에 이어진 질문이다. how's your life? 라는 질문을 했다. 왜 이렇게 이 말이 좋은 지 모르겠다. 뭔가 히카두와에서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안부를 묻는 인사말이지만 직역을 하면 너의 인생 어때? 라는 이 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여유롭고 평화롭고 아무런 걱정 없는 곳이어서 이런 것도 편하게 물어볼 수 있는걸까. 서울 한 복판에서 이런 질문을 했으면 아마 사람들은 또 삐딱한 시선으로 대답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두껍게 썬 식빵을 먹었다. 맛있었다. 서핑을 했더니 상체에 근육통이 생겨서 고작 빵을 써는데도 힘이 들었다. 그리고 플랫 화이트는 굉장히 맛있었다. 음악으로 Here Comes The Sun의 해변 스타일로 커버된 곡이 흐르고 있었다. 이 장소와 매우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히카두와를 생각하면 이 음악이 생각날 것 같다.
커피향과 서핑 소품들이 가득했던 카운터
카페 뒤쪽은 해변으로 이어진다. 이 마저도 완벽하다. 작은 의자에 앉아 담배피면서 책읽는 서양인이 있었는데 진짜 멋있었다.
이 곳에서는 바다 거북이를 볼 수 있다. 바다 거북이 나타 났는데 생각보다 깊은 곳에 있어서 들어가다가 옷이 다 젖어서 제대로 보지는 못 했다. 그래도 먼 발치에서나마 봐서 다행.
드디어 도착한 히카두와 스테이션. 여기 있는 동안 내내 100루피로 흥정해서 툭툭을 타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 현지인들도 200루피 내고 탄다고 했다. 양아치였던 우리...
콜롬보 포트로 가는 기차표.
20분 정도 기다리는데 기차역이 한산하고 조용해서 좋았다. 현지인들에게 이 기차가 맞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다. 그리고 기차역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다들 우리를 흐뭇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관심은 받아도 좋다.
2등석 칸에서 기차를 탔는데, 또..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빠르게 3등석 칸으로 옮겼는데 따로지만 자리가 있어서 각자 앉아서 갈 수 있었다. 기차를 탄게 완벽한 마무리였다. 올 때보다 갈 때 시간이 덜 걸렸던 것 같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음악을 들으며 바닷바람 쐬고 바다를 보면서 오니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히카두와의 여운을 더 길게 느낄 수 있었고 스리랑카에서의 평화로움과 행복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서 좋았다. 또 기차가 마침 붐비지 않아서 조용히 올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운이 좋았던 여행이었다.
바닷가를 달리는 기차와 완벽한 히카두와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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